‘진짜’로 ‘살아남’으라
윤도현 밴드, 김건모, 박정현, 이소라, 정엽, 백지영, 김범수.
어리고 예쁜 아이돌 그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는 요즘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이름만 봐도 "귀가 즐거워지는" 가수들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 놓고 "서바이벌"을 한다고? 반응은 '너무 기대된다'와 '각 분야 최고의 가수들을 데려다놓고 고작 서바이벌이냐', 양극으로 나뉘었다. 뚜껑이 열리고, <나는 가수다>는 모두의 예상대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원로가수의 탈락과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한 출연진과 제작진은 결국 프로그램 규칙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비난에 비난이 봇물 쳤고, 결국 해당 가수와 담당 연출가는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했다. 그렇다면 논란의 직접적 원인인 그들이 없어진 지금, <나는 가수다>에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가?
오락 프로그램에 있어서 ‘리얼리티’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인위적인 각본에 의한 웃음이 아니라 연기자가 웃기기 우해 노력하는 과정의 공유까지 원하게 된 것이다. ‘리얼리티‘라고 대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청자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연기자와 유대감을 형성하며 “진짜”라고 믿게 된다. ’리얼리티‘의 양상 중 하나인 ’서바이벌‘은 시청자와 출연자와의 유대감이라는 측면에서 그저 웃고 떠드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시청자는 TV를 보며 출연자가 느끼는 긴장감을 같이 느끼고, 떨어지면 같이 아쉬워하고, 살아남으면 같이 안도하며 쾌감을 느낀다. 서바이벌이라는 형태에서 시청자는 출연자를 한층 더 친근하게 느끼며 그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방송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출연자에게 자신을 투영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2010년 방영된 케이블 음악방송사 엠넷(M.net)의 ‘슈퍼스타 K 2’의 폭발적인 인기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대한 탄생’으로 공중파 버전 슈퍼스타 K가 탄생했고, 슈퍼스타 K 본편도 올해 시즌 3을 제작할 예정으로 예선을 앞두고 있다. <나는 가수다>의 흥행도 또 다른 <나는 가수다>를 제작하게 했다. 방영이 끝난 케이블 방송사 TVN의 <오페라스타>와, ‘아이돌판 나는 가수다’라고 홍보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사 KBS2의 불후의 명곡2가 그렇다. 연출가라면 자신의 소신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무한도전, 1박2일의 흥행 이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그 세부적인 양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의 척도는 "자신의 목소리", "사회적 고민"이 아니라,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변모했다. 연출가의 직업의식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가 아니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행 따라 우후죽순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은 방송의 본질을 흐리고 그 질 또한 저하시킨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가장 화제가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논란이 된 이유는 그러한 배경을 가진 연출에 있다. 본래의 의도대로 프로그램을 끌어가고, 돌발현상에 대응하고, 출연자를 제어하는 것은 모두 연출가의 몫이다. <나는 가수다> 초기 연출을 맡은 김영희 PD는 세 가지 모두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로그램 본래의 의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기획 의도는 설 자리를 잃은 가수들에게 주말 황금 시간대의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기세가 꺾인 음악 프로그램의 위상을 살리고 시청자에게는 최고의 무대를 오락 프로그램에서 선보여 감동을 선사하는 데 있다. 음악적 감동과 서바이벌의 오락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지만, 즉흥적이고 형평성 없는 연출로 두 마리 다 잃고 말았다. 논란이 된 즉흥적인 규칙 변경-재도전 부여 외에도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인터뷰 장면을 수시로 삽입하고 본 경영 무대를 다음 주로 끊어서 방영하는 등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고심한 연출’이 아니라면 시청자가 기획의도대로 느낄 수 있을 리 없다. 연출가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이끌어 가는 이유가 진정 자신의 목소리를 방송에 담아내기 위해서라면,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아닌 본연의 기획의도에 걸맞은 연출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제점 중 가장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은 지나친 PPL(Product Placement), 즉 간접광고다. <나는 가수다>는 공중파 방송사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인 PPL 노출로 빈축을 사고 있다. 가수들의 개그맨 매니저들이 모니터할 때 노출되는 삼성 PAVV TV와, 심사할 때 노출하는 태블릿 PC 갤럭시탭 등은 방송의 흐름을 끊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케이블 프로그램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지난해 방영된 엠넷의 <슈퍼스타 K 2>에서는 틈만 나면 PPL이 등장했다. 팀 미션에서 승리한 도전자에게 협찬사의 제품을 선물한다는 연출로 브랜드를 노출시키고, 심사위원석 앞에 후원사인 코카콜라 컵을 비치시켜 카메라가 심사위원단을 잡을 때마다 코카콜라를 인식하게 했다. 방송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맥을 끊고 광고를 방영하는 등 그 정도가 훨씬 심각했다. 상업적인 문제는 PPL 노출 이외에도 ‘실시간 유료 문자 투표 서비스’에서도 드러난다. 굳이 시행해야 할 의미가 없는 유료 문자 투표를 통해 이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고, 시청률과 화제성 높이기에 유리하며, 노이즈마케팅효과도 높다. <나는 가수다>가 끝나자마자 유료음원사이트에서 그날 방송에서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모조리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그 파장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상업적 이득을 챙기기에 가장 유리’한 구조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중파, 케이블 방송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는 이유이다.
이러한 양상은, 시청률에 편승해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고, 유익하고 본래 취지에 맞더라도 시청률과 화제성이 낮으면 금방 폐지해 버리는 방송 구조상의 한계 때문에 더욱 성행하고 있다. ‘간 보기’ 형식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한 달이 멀다 하고 생겨나고, 어제 본 프로그램이 오늘 폐지되는 경우는 이제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출연진과 연출자마저 갈아치울 정도로 논란의 파장이 컸던 <나는 가수다>는 여전히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음원 차트 1위를 자랑하며 매 방송분이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매주 주어지는 미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높은 수준의 무대가 시청자의 진심에 가 닿기 때문이다. 오락과 음악이 전도된 지금의 모습을 연출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마냥 웃고 떠들며 생각 없이 보던 방송의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성찰해 봐야 한다. 시청률과 상업적 이익에 연연하는 방송 체계, 쇼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면 설 자리가 없는 가수들, 그들을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으로 내몬 음악 시장 구조의 한계점... TV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대중적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대중은 ‘보고 듣기만 하는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달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단순히 방송 프로그램을 골라 채널을 돌리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구조적, 사회적 문제까지 인식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동적 수용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연출가의 고심과 반성, 자기 시각을 가진 시청자가 있어야 ‘진짜’ ‘서바이벌’이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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